생물다양성[특별기고] 지속가능한 도시에서 분해의 철학을 사유하기: 2025 라이즈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지속가능한 도시에서 분해의 철학을 사유하기

2025 라이즈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천민우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기후/생물다양성 담당관


케이프타운 방문은 이클레이에게 있어 업무적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뜻 깊은 경험이었다.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한 동료 선생님들과 입을 모아 말하길, 세렝게티라던지 오카방고의 하마라던지 거대한 대자연으로 표상되는 아프리카를 생각하고 간 케이프타운은 너무나 '도시'여서 다시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갖는 선입견이 얼마나 큰지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가 지냈던 센츄리 시티는 너무나 국제적인 신도시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인 만큼 케이프타운의 이면에는 여느 도시와 다름 없는 다양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다. 빈부격차, 엄청난 인구 유입에 따른 인프라 부족, 주거 문제, 일자리 문제, 그에 따른 치안 문제... 케이프타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에 도착한 영사관 문자에는 '매우 위험하니 절대로 대중교통을 혼자 타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고 외교부 안전여행포털의 다양한 도난 및 강도 사건 사례들은 아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급속도로 팽창하는 도시들의 문제들을 함축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케이프타운은 아마 앞으로 더욱 발전해 갈 것이고 어쩌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활발한 도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출처: https://riseafrica.iclei.org/rise-2025/)


이런 상징적인 곳에서 열린 2025 라이즈 아프리카는,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의 상상력과 미래를 자아내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케이프타운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모든 도시 거주자들이 생각해 볼만한 시의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막식을 장식한 환영사와 기조연설들은 도시의 지속가능발전의 지향점을 실현함에 있어 생각해 볼 만한 지점들을 짚어주었다.


도시는 다양한 어셈블리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도시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낼 수 있습니다. 

- 에드가 피터스, 케이프타운대학교 아프리카도시센터장


생물학에서 어셈블리지(assemblage)는 특정 서식지를 구성하는 생물종의 집합을 말하기도 하지만 환경 철학에서 어셈블리지는 단순히 요소의 조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람과 자연, 물질, 에너지의 상호작용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방식,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다양한 결과 등, 도시에 존재하는 다양한 주체와 네트워크가 역동하는 과정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도시계획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시티즈 스카이라인" 같은 도시건설 시뮬레이션은 가끔 해 본 적이 있다. 이를테면, 심시티같은 도시를 만드는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만든 도시에는 무엇이 먼저 필요할까? 도시의 구역을 정하고 나서 대체로 가장 먼저 설치하는 인프라는 '상수도'다. 가상의 공간에 공기가 있다고 친다면, 물 없이는 사람은 살 수 없으니 말이다.

도시는 마치 사람처럼 음식과 물, 에너지를 공급 받아 열과 다양한 부산물을 만든다 (Oke et al., 2017)


도시는 끊임없는 물질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종의 복합체라고 볼 수 있다. 도시 내외에서는 물질과 그것을 매개하는 다양한 주체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다양한 새로운 산물을 만들어낸다. 도시에는 물과 공기, 천연자원, 가공품이 매 순간 흘러 들어오며,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와 물류 트럭을 움직이는 석유가 수입된다. 도시 생활자들은 전기를 사용해 빛과 열을 교환해내고, 다양한 모빌리티는 에너지를 사용해 사람과 재화를 계속해서 나른다. 나무와 금속은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고 사용되어 (대체로 결국) 버려지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부산물들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도시 대사 과정을 통해 인간은 정수된 물이 나오는 수도관과 에어컨을 틀 수 있는 전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대기 중에는 400ppm이 넘는 이산화탄소가 떠다니게 되었으며, 인류의 대부분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인정하는 적정 대기질을 준수하지 못한 대기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냉매로 인해 오존층에 구멍을 뚫는 실수(?)를 범한 것은 덤이다. 그러나 누가 이런 모든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을까? 또는 당시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을 경고한 사람들의 외침을 무시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역동적인 도시의 어셈블리지 속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도시를 꿰메는 작업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기후변화, 환경 오염이 드러낸 도시의 균열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가령, 라이즈 아프리카의 시 큐레이터 말리카 들로부는 가장 젊은 대륙인 아프리카에서 이러한 도시 역동을 문화라는 실로 엮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아프로비트가 상징하는 아프리카의 열망과 특유의 활기찬 색감의 팝 컬쳐, 교육, 영적 활동들과 같은 문화적 내러티브와 생산을 도시의 어셈블리지로 적극 활용할 때 우리는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새로운 상상을 엮어낼 수 있을 것이다. 


((c) Sean McCabe, 출처: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features/afrobeats-global-rise-1282575/)


도시가 가려 온 균열 살펴보기: 부패와 분해, 낡고 버려지는 것

개막 세션의 또 다른 주제는 부패의 철학이었다. 선형적인 생산-사용-폐기의 구조 속에서 도시의 어셈블리지가 벌어지는 곳엔 반드시 쓰레기와 폐기물이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에서 버려지는 것들이 어디로 향하고 어떻게, 무엇으로 분해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마포구에 있는 소각장이나 (올해까지만 사용될) 수도권 매립지로 향한다는 것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쓰레기의 최후를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감각하기란 어렵다. 새 것과 반짝거리는 것에 익숙한 만큼, 버리고 재활용되거나 수리하여 사용하는 것, 썩거나 퇴비가 되는 것, 낡고 노화되는 것, 그리고 죽는 것에 대해서는 영 낯설어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일상인 것 같다.

경제 성장과 발전이 지향되는 도시에서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피터스 교수는 도시를 상상함에 있어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는 만큼 낡고 썩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비로소 삶에 가까운, "인간적인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비단 선형적인 소비 구조에서 순환경제로의 전환에 대한 대안적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도시가 물질이나 에너지를 정해진 기능을 가진 것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용 - 어셈블리지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확장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능을 다하고 남은 부산물들이 버려지는 것은 기능을 잃은 재화가 마주하는 선형적인 도시 대사의 운명과도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재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기 때문에 어쩌면 버려지는 물건의 새로운 쓸모를 찾거나, 다른 작용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장난 것을 수리하고, 남은 재료를 재활용 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썩는 것을 퇴비로 만들어 화분을 기르는 ‘분해하는’ 일은 선형적인 도시 대사에서 우리가 단순한 생산자나 소비자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횡단하는 적극적인 주체가 되게 한다. 유기물이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복잡한 도시 시스템의 틈새에서 사람들이 분해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이 보다 자연에 가까워 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도시란 곧 분해되고 순환하는 도시

지난 겨울 세종시 중앙공원에서 겨울 철새를 위한 볍씨 뿌리기 행사를 갔다가 뼈만 앙상히 남은 고라니 시체를 보았다. 한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세종시지만 중앙공원 부지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가 발견된 이후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한 동물의 몸을 이루던 유기물이 다른 동물과 분해자에게 뜯기고 남은 것은 썩어 흙이 되어버린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한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매우 생경한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어찌보면 이 당연한 생명과 물질의 순환이 도시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해되고 새롭게 작용하는 것들 속에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물건과 건물은 낡고 녹슬고 썩는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쓰다 만 무언가를 버리고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새 것을 가져오기 전에 이것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우리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 Bhan, G. et al. 2024. “Cities Rethought: A New Urban Disposition”, Polity Press
  • McFarlane, C. 2011. “The city as assemblage: dwelling and urban space”, Environment and Planning D: Society and Space, 29: pp. 649–671
  • Oke, T. R. et al. 2017. “Urban Climat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 후지하라 다쓰시, 2022.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박성관 역). 사월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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